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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숲교회 이야기 총17회차

11.82년생 김지영 집사님 #여성과교회

몇 년 전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 많은 공감을 얻었던 적이 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온갖 불합리를 겪어 낸 김지영이라는 인물의 이야기이다. 만약 그가 교회를 다녔다고 상상해본다면 어떨까. ‘82년생 김지영 집사님’의 교회생활은 여성으로서 행복했을까?

통계적으로 교회에는 여성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도 교회에서 여성은 홀대받아 왔다. 주로 (아니 99%) 남자인 설교자들의 메시지 안에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성혐오가 표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 교회 안에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들은 주방봉사 등 조용히 뒤에서 궂은 일을 하는 것에 국한 된 경우가 많았다.

나니아의 옷장 책읽기 모임에서 나누었던 책 중에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것은 ‘<페미니즘 시대의 그리스도인>저자 송인규, 양혜원, 백소영, 정재영, 김애희, 정지영 외 |IVP’ 였다. 공지를 올리기가 무섭게 8명의 정원이 꽉찰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해 여성들은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모임에 온 참가자들은 저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회내에서 겪었던 차별과 상처에 대해 털어 놓았다. 더 답답한 것은 지금의 교회에서는 이러한 이야기조차 털어놓을 수 없는 분위기라는 사실이었다.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나도 교회 생활을 오래했지만 남성이라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페미니즘시대의 그리스도인>의 부록에는 한국교회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목회자 설교시 남녀 차별적 발언사례’가 나와 있다. ‘아내는 남편을 내조하는 것이 기본적 역할이다’, ‘여성은 순종적이고 지혜로워야 한다’, ‘교회에서 여성리더는 부드럽고 포용적이어야 한다’, ‘교회에서 남성이 할 일과 여성이 할 일이 따로 있다’ 등등 한번쯤 교회에서 들어봤음 직한 이야기이다. 이 책모임을 진행하면서 주님의숲교회 소그룹 모임에서도 이 주제를 놓고 교우들이 몇 주간 열띤 토론을 하였다. 아직 이 부분에 문제의식이 없거나 생각이 조금 다른 남성 교우들도 참여하여 작은 세미나를 진행하였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사실 이 정도의 공개적 논의도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주님의숲교회는 페미니즘 지향적이거나 여성인권에 있어서 모범적이라고 할 만한 건 없지만, 그래도 이러한 여성차별, 혐오의 요소는 없애려고 노력해왔다. 먼저 찬양인도자가 여성이다. 실제 주변에 보면 아직까지 여성은 찬양인도자로 앞에 세우지 않는 교회가 매우 많다. 어떤 교단에서는 여성은 목사도 될 수 없다. 여성이 교회 안에서 머리가 될 수 없다는 성경해석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미국의 한 목사는 '성경에 의하면 여성은 남성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도록 허락되지 않았다'고 당당히 주장한다. 그럼 남자가 길을 가다가 여자에게 묻는 것도 안되느냐는 우스개가 돌 정도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존재로 창조되었고, 교회안의 역할이 나누어 져 있지 않다고 믿는다. 특히 여성도 교회안에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도 청년시절 찬양팀 생활을 많이 했고 다른 찬양팀이 인도하는 집회에도 많이 가본 편이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항상 남자 찬양인도자가 기타를 매고 권위있게 지도하고 여성들은 옆에서 백업보컬로서 순종하며 따라가는 분위기 일색이었던 것 같다.

매주 주님의숲교회 주일예배 찬양을 인도하는 찬양팀. 주로 여성멤버가 마이크를 들고 앞에서고 남성들이 뒤에서 악기로 백업하는 형태이다. 

초창기부터 주님의숲교회 찬양인도자로 섬기고 계신 분은 두 아이의 엄마이자 평범한 직장인이다. 우리 교회의 주일예배에는 찬양의 비중이 큰 편이다. 목사인 내가 나와서 설교하기 전까지는 그 여성인도자분이 예배를 주관하는 형태가 된다.

헌금을 드린 후 교우들이 돌아가면서 대표기도를 한다. 이 때에도 남녀 구분 없이 모두가 동등하게 참여한다. 물론 우리는 아직 작은 공동체라 장로 직분이 없기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예배순서 안에 암묵적으로라도 남녀가 역할이 구분된 부분은 없다.

식사를 준비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교회는 몇 분의 여성 권사님들이 수년째 주일이면 새벽부터 나가서 전교인의 식사를 책임지기 위해 수고하시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는 처음부터 그런 부분을 탈피하고자 모든 교우가 남녀 구분없이 돌아가며 그날의 식사를 책임지는 방식을 만들었다. 그렇기에 ‘주방은 여성 전담의 영역’이라는 개념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설거지도 마찬가지이다. 식사후 차를 마시며 사다리타기로 설거지 당번을 정한다. 여기에는 목사인 나도 빠지지 않는다. 주님의 뜻인지 이상하게도 내가 설거지를 제일 많이 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사모의 역할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교회에서야 담임목사님의 아내인 사모가 또 하나의 권위체제로서 말의 힘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개척교회에서는 반대이다. 개척교회의 사모는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다가 병까지 나는 경우를 본다. 목사야 앞에서 마이크 잡고 사람들과 인사하고 리더의 역할을 하지만, 사모는 뒤에서 아이들 뒤치다꺼리하고 매주 교인들 식사대접을 해내는데 지쳐버린다. 이것 또한 건강한 교회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주일에 나의 아이들도 내가 많이 돌보려고 하는 편이다. 아이들이 어리기에 돌봄이 필요할 때가 많은데, 내가 앞에 나가서 순서를 진행해야할 때가 아니라면 그 역할을 아내에게 미루지 않으려 한다.

아이들을 돌보는 건 매우 체력이 많이 드는 일이다. 교회에서 아내에게 아이를 던져 놓고 내 할 일만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어느 주일엔가 오후에 나도 지쳐 아이와 함께 잠들었다.

우리 교회는 현재 비혼자와 기혼자가 반반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비혼자가 많았는데 그간 6쌍이 결혼하여(교회 내의 커플은 없고 모두 외부에서 배우자를 구했다) 이제는 같은 비율이 되었다. 비혼이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그것은 ‘아직 결혼을 못했다’라는 ‘미혼’과는 전혀 다른, 그저 ‘결혼을 하지 않았다’라는 담백한 표현이다.

보통 교회문화에서는 30대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청년부원들에게 ‘언제 결혼하느냐, 빨리 결혼해서 자리 잡아야지’라는 말들을 한다. 물론 애정과 관심으로 하는 말이겠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에 ‘빨리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가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며 신앙적으로 접근할 경우에는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시대적으로 결혼을 늦게 하는 추세이고 또 그마저도 결혼이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성경적으로 옳고 그름으로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바울 사도도 ‘혼자 지낼 수 있으면 혼자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교회문화에서 전통적인 결혼관을 강요하는 분위기로 인해 청년부에서 나이가 찬 이들은 어느 틈엔가 소리없이 교회를 떠나가는 경우들이 많다. 이것도 교회의 차별과 혐오의 요소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남자는 좀 결혼 늦게 해도 돼’라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하며 ‘여자는 빨리 결혼해서 현모양처가 되야지’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옳지 않다.

 

우리 교회 안에서 만큼은 그런 불필요한 마음의 부담을 겪지 않게 하고 싶었다. 초창기부터 서로에게 결혼 문제에 대해 특정한 관점을 강요하지 않고, ‘비혼’자들도 맘 편히 생활할 수 있는 교회문화를 만들어 왔다. 그러다가 또 좋은 사람을 만나면 결혼하면 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여섯 커플이 결혼을 하였고.

나니아의옷장에서 결혼식을 진행한 적도 있다. 우리 교회 식구는 아닌데, 모 대학생선교단체의 간사 커플이었다. 여러 사정상 일반적인 결혼식장을 잡기 어려운 상황이라 나니아의 옷장에서 작은 결혼식을 준비하였다. 새로 출발하는 부부를 위해 우리가 전날 밤 늦도록 꽃장식을 하고 공간을 치장했던 기억이 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교회가 이런 면에 있어서 앞선 인식과 모범적인 체계를 완성했다라는 건 아니다. 다만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대접받는 교회, 여성도 남성도 리더가 될 수 있는 교회, 역할 구분으로 제한받지 않는 교회가 되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 정도만 되어도 ‘82년생 김지영 집사님’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회 안에서 눈물 흘리는 일은 없지 않을까.